[함께하는 시민사회] 복수를 당해야 할 이는 ‘을’들이 아니라 ‘슈퍼갑질’의 가해자들
등록 2015.01.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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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시민사회 | 참여연대

복수를 당해야 할 이는 ‘을’들이 아니라 ‘슈퍼갑질’의 가해자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성공회대 외래교수


<한겨레>2014년 12월 18일 1면 보도 갈무리


최근 소셜커머스 ‘위메프’의 채용 갑질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얼마나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뜨거웠던지,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12일 '채용 갑질' 논란을 일으킨 위메프에 대해 근로 감독을 시작하기도 했다. 위메프는 지난해 12월 지역 영업직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최종 전형에 오른 11명을 대상으로 2주간 실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현장 테스트를 진행한다면서 강도 높은 업무를 시켰고, 또 11명 중 8명은 정직원으로 채용할 것이라는 약속까지 했지만, 전원 불합격 처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당사자들이 울고 끝났을 일이 범국민적 이슈가 되었고,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2주간 고생만 하고 잘릴 뻔했던 청년 노동자 11명이 모두 채용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갑질’에 분노한 ‘을’들의 반격


고용 불안과 일자리 부족, 열악하고 비인격적인 처우에 고통 받고 상처 받으며, 재벌·대기업 뿐만 아니라 사용자 전반에 만연한 ‘갑질’에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지금 자연스럽게 범국민적 연대를 통해 이 반인간-반노동의 시대에 저항하고 있다. 집집마다 1~2인씩은 비정규직이 있을 수 있고, 정규직이라 해도 회사에서 온갖 갑질과 수모를 겪고 있다 보니,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을’로서 총반격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총반격은 먼저 2012~13년 재벌·대기업으로부터 온갖 횡포를 당하던 중소상공인, 대리점·가맹점주들로부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유업 사태다. 이를 전후해서 전국의 중소상공인들과 뜻있는 시민단체들은 전국적인 ‘을’ 살리기 운동에 돌입했고, 지금까지도 활발한 대응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 12월 30일 밤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속·수감되었다. 인과응보·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정반대로 영화 속의 권선징악이 구현되고 있다. 역시 이 같은 변화도 우리 국민들의 열망이 만들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묻힐 수도,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이 언론의 보도, 참여연대의 고발과 잇따른 폭로, 그리고 박창진 사무장의 용기 있는 증언을 계기로 전 국민적 이슈로 발전했고, 결국 그 공분이 검찰의 수사를 진전시키는 힘이 되었다.


조양호 회장 일가를 향해 쏟아지는 분노


그런데 조양호 회장 일가는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해명, 진상 은폐, 영혼 없는 사과로 일관했다. 심지어 ‘복수’까지 하겠다고 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려 했던 것일까를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복수를 당할 것은 ‘을’로서 무수히 많은 고통과 고충을 감내했어야 할 대한항공의 직원들이나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언론·NGO가 아니라 바로 조양호 회장 일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조현아 사태 이후 시민사회에는 대한항공 안팎의 비리와 부조리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무소불위의 권력 행태로, 특히 노동자·직원들에 대한 ‘슈퍼 갑질’에 관한 것이 많다. 행사장에서 사회자를 보조하고 있던 여직원을 조현아 씨가 사람들 앞에서 고성에 삿대질로 쫓아낸 사례, 조원태 부사장이 인하대 이사회(조양호 회장 일가가 장악)의 파행적 운영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일꾼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례, 서울 한진그룹 본사 1층과 인천 인하대병원 1층의 커피숍을 각각 조현아·조현민 자매가 경영하게 한 부당지원 사례, 대한항공이 평소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고 관리를 해온 사례 등 수없이 많은 문제가 사실로 확인되었다. 제보 중에는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들도 있는데, 총수 일가의 전횡으로 사내 비판의 자유가 실종되어 어쩔 수 없이 시민사회에 제보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 근절되는 계기가 되어야


상황을 종합해보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잘못은 이번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터진 것도 아니다. 참여연대가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태를 고발한 목적도 한 개인에 대한 추궁과 단죄만은 아니었고, 개인에 대한 단죄로 끝나서도 안 된다. 이 사건은 돈과 권력이 있는 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노동자·시민에 대한 갑질이 확실히, 그리고 영원히 근절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연대에 나선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총수 일가의 전횡과 행태를 회사 내부적으로 감시·견제·개선하지 못하면 해당 기업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기업들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갑’의 잘못이 철저히 엄단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란 일하는 사람을 쫓차 내지 않는 것’

기차 길옆 작은 학교의 한 학생이 굴뚝 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이다. 맞춤법이 좀 틀리긴 했지만, 정리해고나 부당 처우로 인해 거리로, 하늘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뛰어난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