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나 - 김동민] 민언련의 비상을 기대하며(2014년 10호)
등록 2014.10.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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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의 비상을 기대하며


글 김동민 민언련 이사  l  wanju9691@hanmail.net


  그 땐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언협’이라고 했지. 1989년 봄이던가, 언협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홀로(?) 기획부장이던 김택수가 제안한 사무국장직을 수락하면서 언론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당시 언협은 월간 『말』의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사실은 언협의 주인인데, 한겨레신문의 창간 이후 언협이 동공화 된 반면에 말지는 민주화의 분위기를 타고 승승장구 하던 때였다. 말지는 정기간행물 등록을 한 합법 월간지로서 5만부 가량 발행하고 있었다.


말지의 기세는 등등했다. 주인의 상투를 틀어쥐고 흔들었다. 말지 기자들은 한 귀퉁이에서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는 언협과 활동가들을 군식구 취급하며 언협 무용론까지 거론했다. 언협이 주주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언론운동 무용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부 인사들에게 언협은 단지 잘 나가는 잡지의 주주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언협을 장악하여 말지를 사유화하려는 선수들까지 등장하여 한동안 홍역을 앓기도 했다. 그 때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떡고물을 바라고 언협 활동을 한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으며 임시의장을 맡아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그런 언협을 살린 것은 ‘언론학교’였다. 첫 회부터 성황을 이루어 시민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대중강좌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언론학교 수강생 중 일부가 회원으로 남아 활동을 시작하여 해직기자들의 단체가 시민단체로 변모해갔다. 언협의 주체가 해직기자에서 시민으로 바뀌었다. 해직기자들의 빈자리를 시민들이 채움으로써 새롭게 언협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셈이다. 

따라서 단체의 성격도 재야운동단체에서 시민운동단체로 바뀌어갔다. 결국 이름도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민언련)’으로, 그리고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 바꿨다. 그 결과 1990년대 시민운동시대에서 언론운동을 담당하는 유일한 시민운동단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



  1992년 4월의 총선은 언론학교 출신 회원들이 구체적인 활동을 개시한 첫 사업이었다. 여성민우회, NCC 등과 함께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선감연)를 결성해 신문과 방송의 선거보도를 모니터하고 왜곡보도를 알리는 활동을 한 것이다. 당시 회원들이 열성적인 활동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이후로 12월의 대선은 물론 지방선거까지 포함하여 선거 때가 되면 어김없이 ‘선감연’을 결성하여 감시활동을 했고, 나는 집행위원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그때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모니터 결과를 신문사 방송사에 팩스로 전송하고, 간혹 신문을 제작하여 대중집회에서 뿌리는 게 전부였다. 전송된 팩스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생각 있는 사람들은 보고 활용했을 것이다. 특히 언론사 노조와의 연대는 큰 힘이었다.


그 사이에 정책위원회를 유지한 것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나와 주동황, 최영묵 등 정책위원들은 아직 전임이 되기 전 호주머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도 거금을 월회비로 내면서 언협을 지켰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민언련을 떠난 정용준 교수를 포함해서 어려웠을 때 함께 해준 이들의 노고를 잊지 못한다.



  1996년 9월 전주에 있는 대학에 부임한 이후로는 활동이 뜸했다. 그리고 99년에 전주시민회 활동가들과 함께 전북민언련을 창립하여 공동대표를 맡아 다시 민언련 활동을 시작했고, 조선일보 거부운동으로 이어졌다. 세 차례에 걸친 지식인선언을 주도한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를 결성하여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과 오종렬 선생님, 문규현 신부님 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민간법정’과 ‘공공의 적 조선일보 규탄대회’ 등 많은 행사를 치렀다. 며칠 전 창졸지간에 우리 곁을 떠나신 성유보 이사장님께 상임대표를 부탁했는데 사양하시고 내게 일임한 기억이 새롭다. 최민희 사무총장과 이유경 간사의 열성적인 활동도 눈에 선하다. 시청자연대회의와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던 것도 민언련 활동의 연장이었다. 참 많은 일을 하며 중년의 인생을 헌신했다.



  지금은 민언련이 답답하다. 언론운동의 맏형으로서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변(變)하는 시늉만 내고 화(化)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목표는 내용까지 바뀌는 것(化)이다. 변장(變裝)이 아닌 변이(變異)여야 한다. 장자(莊子)의 이야기처럼, 매미나 새끼 비둘기의 조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붕(鵬)으로의 비상이 절실하다. 언론의 현실이, 아니 이 나라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