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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제외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논평
등록 2013.09.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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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제 외교에서도 손을 떼라
- 북미관계 읽지 못한 ‘친미신문’의 부질없는 ‘부시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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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아직도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제외 조치에 ‘분’이 덜 풀린 모양이다.

지난 11일 미국이 북한과 핵검증 프로그램에 합의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자 조선일보는 13일과 14일에 걸쳐 부시 정부를 맹비난하더니, 오늘(20일)도 김대중 칼럼 <‘악의 축’ 소리나 하지 말든지…>를 싣고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칼럼 서두부터 김대중 씨는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인 크리스토퍼 힐을 조롱조로 ‘김정힐’이라고 부른다. 북한 김정일의 ‘일’ 대신 ‘힐’을 합성한 것으로 그가 대북 핵 협상에서 사사건건 김정일에게 양보만 해온 것을 비꼰 것”이라며 힐 차관보를 맹비난하는 네오콘의 불편한 심기를 소개했다.

 


이어 “미·북 협상의 총체적 결산은,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셈이고 미국은 그런 상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대상에서 해제해 준 꼴”이라며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와 북미가 합의한 핵검증 프로그램을 북한 ‘핵보유 인정’으로 몰아붙였다.

김대중 씨는 외신도 인용했는데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이제 임기 말에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 하나라도 건져볼까 하는 초조함에서 일을 그르친 것으로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핵의 궁극적 제거를 기대해오던 한국 사람들에게 힐의 협상결과는 배신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특히 미국이 실속 없는 합의를 근거로 북한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시켜 준 타이밍을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불만을 토로했다.

 


또 “이런 시점에서 김정일 정권에 대해 어떤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고무하는 듯한 부시 행정부의 처신은 북한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과 세력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있다. 그럴 바에는 애당초 ‘악의 축’ 소리나 하지 말 것이지, 한 때는 ‘북한 민주화’의 선봉에라도 선 듯이 팡파르를 울리더니 이제 퇴임을 얼마 안 남기고 김정일에게 웃음을 보내는 따위의 행위는 어느 면에서 우리를 화나게 한다”고도 했다.

 


‘친미신문’ 조선일보의 간판 칼럼니스트인 김대중 씨가 미국 정부에 대해 이토록 분기탱천 하는 것은 무척 낯설다. 김대중 씨를 비롯한 조선일보 사람들은 자신들과 ‘혈맹’이라고 믿었던 부시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13일과 14일에도 조선일보는 부시 정부를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를 쏟아냈는데, 그 제목들만 봐도 조선일보가 북한 테러지원국 제외 조치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정부, 겉으론 ‘환영’ 속으론 ‘이견’... 일본은 노골적 ‘불만’> 13일 3면
<[북, 뭐가 달라지나] 21년된 낙인 지웠지만 실익은 아직...> 13일 3면
<미 다음 정부에 떠넘긴 ‘북핵 뇌관’> 13일 4면
<부시가 졌다> 13일 4면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의 북핵 행방> 13일 사설
<일 “北 테러지원국 해제, 美에 속았다” 발칵> 14일 5면
<美 마지막까지 찬반 팽팽> 14일 5면
<대한민국은 北의 플루토늄과 우리늄을 좌시할 수 없다> 14일 사설
<‘공갈’은 역시 해볼 만한 장사> 14일 류근일 칼럼

 


제목들에서 드러나듯 조선일보는 한국, 일본 정부가 모두 미국의 조치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 미국 정부 내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는 점 등을 부각했다. 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함으로써 기대되는 긍정적인 전망보다는 ‘부시 정부가 차기 정부에 골칫거리를 넘겼다’, ‘북한의 공갈을 받아준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부시가 졌다>에서는 부시 미 대통령을 “8년간 김 위원장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라고까지 혹평해 조선일보가 부시 정부에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조선일보는 미국 정부를 향한 불만을 가득 담은 사설도 두 편이나 썼다.

13일 사설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의 북핵 행방>에서는 “지난 6월 북한의 핵 신고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미, 북 협상은 매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면서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 외교적 업적에 급급하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원칙 없는 양보”라고 비난했다. 당초 미국은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만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곳을 점검할 수 있는 ‘국제 기준에 맞는 검증’을 주장”했으나 “이번 합의는 북한이 신고한 시설에만 검증을 하도록 하고 미신고 시설은 북한의 추가적·개별적 동의를 얻어야만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전형적 떼쓰기 전술이 이번에도 먹혔으니 북한이 언제 그 억지 카드를 다시 뽑고 발을 뻗을지 모를 일”이라며 “이제부터라도 한국과 미국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이행사항을 점검하면서 불능화를 거쳐 핵 폐기까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합의문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할 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6자 합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든 말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든 말든 북한을 강경하게 몰아붙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14일 사설 <대한민국은 北의 플루토늄과 우리늄을 좌시할 수 없다>는 똑같은 주장을 좀 더 강경한 표현으로 반복했다. 비장한 제목은 일개 신문의 주장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집단의 주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조선일보는 “북한 미사일에 핵탄두가 얹힐 때 가장 위협을 받는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북한 핵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대한민국이다”, “무기화된 플루토늄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또 농축우라늄은 있는지 없는지만은 끝까지 검증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검증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나아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뺀 문제로 벌어진 한미일 간의 틈을 하루빨리 메워야 한다. 어느 한 나라가 각기 국내 사정을 구실로 공동전선에서 이탈한다면 북한은 이런 틈새를 이용하려 들 것이 뻔하다”며 미국 정부가 대북 강경 노선을 취해온 한국,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한편 류근일 칼럼 <‘공갈’은 역시 해볼 만한 장사>에서 류 씨는 ‘북한 체제 전환(regime change)’ 선동을 격화시켜 북핵 문제에 대처하자는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

 


대북 강경 정책이 ‘원칙’이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것만이 ‘진정한 한미동맹’인 양 주장해왔던 조선일보로서는 미국의 조치가 엄청난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외교는 그야말로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조선일보는 ‘북한의 의심스러운 모든 시설에 대해 검증하는 것’이 원칙인데 미국이 이 ‘원칙’을 깨고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만 검증하기로 합의해주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시켜주었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원칙’라고 주장하는 핵검증 요구는 미국 내에서조차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늘 김대중 씨가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비판하는 언론’으로 언급한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9월 26일 보도를 보자. 워싱턴포스트의 이 보도는 당시 연합뉴스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단독 입수한 문건을 인용해 ‘미국이 중국, 러시아 등 6자 회담 당사국과 미국 행정부 내부 인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지나치게 엄격한 핵검증 프로그램을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북한에 핵 프로그램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지점과 시설, 위치에 대한 전면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한편 “조사관들의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뿐 아니라 필요하면 얼마든지 머무르면서 지속적으로 의심 지역을 방문해 표본을 수집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6자회담 당사국들이 북핵 검증 과정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미국이 이 합의안과는 별개로 무리한 요구를 담은 제안서를 작성해 북한에 보냈고, 이 때문에 북한은 협상 내용이 뒤집히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유엔 핵사찰단 활동을 한 바 있는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내용이 “북한의 군사시설을 정탐할 권리”를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주권국가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이와 같은 핵검증 프로그램을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주요한 ‘테스트’로 여겼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듯 워싱턴포스트나 국제관계 전문가들조차 부시 정부의 핵검증 프로그램이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라고 진단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가 이를 고집했다면 지난해 10·3 합의에 따라 어렵사리 진전되어온 비핵화 조치는 2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채 6자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을 것이고, 부시 정부도 큰 정치적 부담을 졌을 것이다. 부시 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무리수를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북미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백해무익한 상황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한반도 긴장고조에 아랑곳없이 북미관계의 냉정한 현실조차 읽지 못한 채 무조건 대북 강경 기조만 주장해왔고, 이명박 정부 역시 이런 조선일보의 잘못된 ‘훈수’를 따랐다. 결국 북미 관계가 개선되자마자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했던 이명박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남북관계 전면단절’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다. 이른바 ‘통미봉남’ 전술에 끌려가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남북관계가 악화되니 안보위기 지수마저 높아졌고, 이 때문에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이명박 정부가 말로는 ‘실용’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낡은 냉전 수구 이념에 사로잡힌 ‘조선일보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조선일보와 결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안보위기 지수는 높아지며, 북한으로부터 통미봉남의 ‘수모’를 당하는 작금의 현실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관계를 읽어낼 능력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잘못된 ‘훈수’를 두고 있는 조선일보는 이제 좀 빠져주었으면 한다. 조선일보의 ‘훈수’로 되는 일이 없다. <끝>

2008년 10월 20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