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시도교육감협의회의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개입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
등록 2013.09.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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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멀쩡한 교과서 ‘붉은 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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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들이 멀쩡한 교과서를 ‘편향 교과서’로 규정해 일선 학교의 교과서 선정에 개입하겠다고 나섰다.
8일 전국 16개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가 남북 분단의 책임을 미국이나 남한정부 수립으로 돌리거나 경제성장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는데 교육감들이 공감”했다며 “고교들이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시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과서를 고르지 않도록 지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학교장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들이 ‘지도’라는 이름으로 특정 교과서의 선정을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자 9일 조선일보는 교육감협의회의 방침을 1면에 싣고 교육감들이 ‘편향 교과서’ 문제에 대책이라도 세운 양 부각하고 나섰다. 1면 기사 <‘좌편향’ 근·현대사 교과서 가려낸다>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중 일부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을 남북 분단의 원인인 것처럼 서술하고,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 데 대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또 “금성출판사 등 일부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는 ‘민중·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좌편향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국 고교의 50% 이상이 가장 좌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채택해 논란이 됐다”며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았다.

그러나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 어디에도 ‘대한민국 건국이 분단을 초래했다’는 주장을 찾아 볼 수 없다. 해당 교과서는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등을 다루며 “미국과 소련이 설정한 38도선이 분단선이 되고 말았다”, “광복 이후 통일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민족 구성원들 사이의 좌우 이념 대립과 세계적으로 깊어진 냉전 체제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3년 만에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이어 북한에도 별개의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분단은 굳어지고 말았다”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9일 보도를 통해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지적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며 뉴라이트 등 일부 세력의 주장을 근거로 금성출판사의 교과서에 큰 오류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몰아갔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근·현대사 교과서의 국가관과 북한관을 줄곧 비판해 온 ‘교과서포럼’은 지난 3월 ‘대안 교과서’를 내놓기도 했다”며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출간한 ‘대안 교과서’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소위 ‘대안 교과서’야말로 일제 강점기를 “근대국민국가 수립 능력이 축적된 근대화 시기”라며 친일파의 논리를 펴는가 하면, 5·16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미화해 출간 당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는 등 역사 교과서로서는 균형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중앙일보도 같은 날 12면 <“좌편향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막겠다”>라는 기사를 싣고 “편향된 이념을 담고 있는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검정)를 학교가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도록 시·도교육청이 개입한다”고 전했다.

또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가 남북 분단의 책임을 미국이나 남한 정부 수립으로 돌리거나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부정적 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이념 편향 문제는 시각차이”, “(교육감협의회의 조치가) 교사와 학교의 교재선택권을 침해하는 건 물론 교육자치에도 어긋난다”는 상명대 주진오 교수의 인터뷰를 담아 조선일보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반면 경향신문은 1면 <시·도 교육감 교과서 선정 개입 논란>에서 교육감협의회의 조치를 “교과서 포럼 등 뉴라이트 단체들이 추진하는 ‘역사 좌편향 바로잡기’의 일환”이라고 분석하고 “내년 1학기 교과서 선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10면 <학계·출판계 “코드 안맞는 교과서 길들이기”>에서는 “정부와 코드가 안맞는 교과서에 대한 ‘불매’ 압력으로 해당 출판사들이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도록 직접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역사·출판계는 ‘교과서 길들이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또 “근·현대사 교과서가 중립·객관적으로 기술됐고, 재계 등의 요구는 친미적 인식에 경도된 ‘왜곡’이라고 지적해 왔다”는 역사학계의 평가를 언급하며 교육감들의 근·현대사 교과서 ‘편향성’ 주장을 반박했다.

더불어 “학교의 자율을 넓혀 가겠다고 하더니 도리어 역행하고 있다”, “권력기관이 교과서 내용과 채택에도 개입하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라는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교육감들의 이번 결정이 학교의 자율적 교육과정을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경제 교과서 등 사회 교과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겨레도 2면 <시·도교육감 “이념편향 교과서 채택 않겠다”>에서 “역사교육 전문가들은 교육감들이 일선 학교의 교과서 채택 과정에 개입해, 사실상 교육감들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강요하겠다는 것”이라며 교육감들의 이번 조치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기사는 또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는 보수단체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 왔”지만 “2004년 한국사연구회와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학회들이 심포지엄을 열어 ‘교육부의 7차 교육과정에 제시된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 원칙에 충실했다’고 공개 검증까지 마친 상태”라며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편향성’ 주장을 반박했다.

아울러 “교육청이 나서 교과서 선정과 관련해 교장 연수까지 실시해 가며 ‘균형 잡힌 교과서 선정’을 돕겠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교과서를 걸러내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라는 내용의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의 인터뷰를 전했다.

이와 함께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시·도 교육감협의회가 ‘교과서 포럼’ 등 뉴라이트 진영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 논리를 역사학계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교육 현장에 일방적으로 주입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부터 뉴라이트 등 이른바 ‘보수세력’들과 수구보수신문들은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를 끊임없이 음해하고 흔들어 왔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시·도 교육감들은 ‘편향 교과서’ 운운하며 교과서 선정 개입에 나섰다. 근현대사에 대한 ‘뉴라이트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쫓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은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정당한 대책인 양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수구보수신문들에게 금성교과서의 어떤 부분이 ‘좌편향’인지 묻고 싶다. 또 사학의 이익을 대변하고 교육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을 지지할 때에는 학교 ‘자율성’을 외치다가 정작 교과서 선정에 개입하겠다는 교육감들의 ‘정치적 행보’는 왜 비판하지 않는지도 묻고 싶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는 수구보수신문들과 일부 교육자들이야말로 ‘이념 편향적’ 태도로 우리사회 백년대계를 망치고 있다. <끝>



2008년 9월 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