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의 '쿠데타 선동' 망언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9.21)
등록 2013.08.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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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신문, '쿠데타 망언'도 물타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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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일)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이 공당의 대변인으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했다.
그는 국회 현안 브리핑에서 태국의 군부 쿠데타를 두고 "탁신 총리의 통치 스타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노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면서 "노무현 정권은 이번 타이의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을 향해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잘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밖에 풀이할 수 없는 그의 망언은 사실상 '쿠데타 선동'이나 다름이 없다.
각 정당의 대변인들이 그의 망언을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하고, 비난 여론이 들끓자 유 대변인은 "어느 정권이든 국민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국민이 싫어하는 일을 자제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돼야한다는 의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화 산업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완성된 한국에서 민주주의 후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태국 사태 언급 역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기초로 두고 한 것"이라는 등의 변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망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의례적인 '해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서 어떻게 남의 나라 쿠데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겁박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망언은 태국과 한국의 민주주의 이행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 두 나라가 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구분하지 않은 채 태국의 쿠데타를 끌어다 '노 정권도 잘못하면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꿰어 맞춘 무지하고 무책임한 주장이며, 지난 수 십 년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발언이다. 이런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유 대변인은 제 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자격이 없으며, 국민 앞에 망언을 사죄하고 사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21일 일부 신문들은 유 대변인의 망언을 정치권의 '해프닝' 쯤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동아일보의 관련 보도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을 동원한 유 대변인 감싸기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9면에 <여야 막말 공방>이라는 제목의 3단 기사를 싣고 "국회가 20일 '매춘'과 '쿠데타' 등 막말 공방으로 하루 종일 떠들썩했다"며 유 대변인의 '쿠데타 선동'을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향한 '정치적 매춘 행위' 발언과 싸잡아 '막말 공방'으로 보도했다. 쿠데타 선동은 상대 정당을 비난하기 위한 감정적인 막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치인들의 저급한 막말이 극복되어야 할 구태인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유 대변인의 '쿠데타 선동' 망언을 정당 간의 막말 공방으로 축소시키고, 본질을 은폐하는 전형적인 '물 타기' 보도를 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소극적인 '면피성 보도'에 그쳤다.
조선일보는 3면 기자수첩에서만 유 대변인의 망발을 다뤘다. <주워 담아야할 '쿠데타 발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쿠데타까지 억지로 갖다 붙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를 더욱 거칠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유 대변인의 망언은 정당들이 '상대를 자극해 정치를 거칠게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 받는 것이다.
한편 중앙일보는 2면 기사 <"태국 쿠데타 남의 일 아니다">에서 "유 대변인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각 당에서 비판이 쏟아졌다"며 유 대변인의 발언과 함께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과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의 비판 발언을 단순 소개하는데 그쳤다.
반면 한겨레는 <아찔한 댓글들 '온라인 쿠데타'>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통해 유 대변인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하는 한편, 보수언론 사이트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동조 또는 선동하는 의견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수구보수신문들은 자신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문제 삼아 정치 쟁점화 하는 데 앞장섰다. 또 걸핏하면 자신들과 다른 주장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무차별적인 색깔공세를 펴고 합리적인 사회적 논의를 가로 막아 왔다.
이들 신문이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쿠데타 선동' 망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나 물타기 행태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친한나라당 신문'들이라지만 '군부 쿠데타 선동은 안된다'는 정도의 비판정신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유 대변인과 한나라당, 그리고 수구보수신문들은 과거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던 군사독재정권이 어떻게 끝났는지 역사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끝>

 


2006년 9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