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KBS ‘천안함 성금모금 생방송’에 대한 논평(2010.4.12)
등록 2013.09.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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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천안함 모금 생방송’, 배경이 뭔가?
 
 
11일 KBS가 이른바 ‘천안함 성금모금 생방송’을 긴급 편성해 빈축을 사고 있다.
KBS는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의 희생정신 등을 기리기 위해 생방송의 장을 마련했다”며 <특별생방송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성금모금 생방송을 1,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오후 12시 10분∼2시 20분)에서는 음악공연과 함께 성금모금을 진행했고, 2부(오후 5시 30분∼8시)에서는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 박효종 서울대 교수, 안기석 전 해군작전사령관 등이 출연해 천안함 희생의 가치, 희생자 예우방법 등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한편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을 필두로 이귀남 법무부장관, 김황식 감사원장 등이 성금을 들고 스튜디오를 찾았고,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과 백희영 여성부 장관은 1부 후반에 영상으로 등장했다. 이 외에도 장관들과 정부 관계 기관들이 ‘성금’을 냈다는 사실이 화면을 통해 여러 차례 비춰졌다.
‘천안함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로하고 희생정신을 기억하는 일’ 자체를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KBS가 이 시점에 ‘모금 생방송’을 벌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KBS의 ‘모금 생방송’을 비판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천안함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보름이 넘었지만 대다수 실종자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있고 사고원인도 오리무중이다. 정부는 오락가락 말바꾸기와 정보통제로 불신과 의혹을 키웠고,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 무능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건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하루라도 빨리 실종자를 찾고 사건의 진상을 의혹 없이 규명하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가 해야 할 일 역시 정부의 구멍 난 위기관리 시스템을 꼼꼼하게 따지고, 혹여 정부가 어물쩍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떠넘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 견제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을 예우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며, 정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국민 모금보다 먼저다. 만약 진상이 규명되고 희생자 예우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정부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들이 모금을 해서라도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자’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KBS가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모금 방송을 편성하고, 국민들을 향해 ‘위기 상황에서 힘을 모아 달라’, ‘힘과 지혜를 모아 헤쳐 나가자’며 단결을 호소하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케 만든다.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비판하는 여론을 ‘희생자 가족 위로’, ‘국민적 단결 호소’ 등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실제로 모금 방송에 나온 출연자들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민의 자세’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보호되어야 할 군사기밀마저도 언론보도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향후 처우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게다가 정권의 책임 있는 인사들까지 ‘성금을 냈다’며 TV에 얼굴을 내밀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편 KBS는 이날 저녁 메인뉴스에서도 첫 꼭지와 두 번째 꼭지로 ‘천안함 모금 생방송’ 소식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우리는 KBS가 실종자들도 찾지 못한 이 상황에서 ‘천안함 성금모금 생방송’에 나서고, 보도를 통해 이를 거듭 부각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KBS가 ‘모금 생방송’으로 정부를 향한 국민의 비판 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사고수습과 진상규명에 힘써야 정부, 정부를 감시해야 할 ‘공영방송’이 납득할 수 없는 처신을 거듭할 때 국민의 불신만 깊어질 뿐이다.
희생자,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사고의 ‘진실’이며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KBS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정부가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하게 가리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끝>
 
 
 
2010년 4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