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안녕하지 못한 ‘안녕하세요’ (2014년 2호)
등록 2014.03.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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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못한 ‘안녕하세요’


양희주 방송모니터분과 회원 l hey.summer.news@gmail.com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는 방송 초기에만 해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들을 엿보며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온가족이 모여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요즘 <안녕하세요>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방송이 됐다. “칼 맞기 싫으면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협박하면서 평생 누나와 같이 살겠다는 ‘올가미’ 남동생, 여자 친구에게 겨드랑이 털을 강제로 기르게 하는 남자 친구, 아내의 가슴을 만지는 것이 습관이 돼 친척들 앞에서도 아내의 가슴을 만진다는 남편, 남동생을 24시간 감시하는 ‘미저리 누나’까지 <안녕하세요>는 뒤틀리고 일그러진 다양한 인간관계를 버젓이 넘나들며 그 단면을 시청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각하고 은밀한 사생활을 스스로 노출하는 출연자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때로는 방영된 사연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해프닝에는 십중팔구 ‘상금 500만원’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작용한다. 출연자가 상금을 노리고서 주저 없이 ‘자폭’한다 해도 결국 그 책임은 그 출연자를 섭외한 KBS 측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KBS는 민감하고 선정적인 소재도 전혀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 ‘아내를 야동에 나온 여배우로 의심하는 남편’이 방송에 나간 후 ‘네티즌 수사대’들은 기어이 문제의 그 동영상을 찾아냈다. 해당 영상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순위에 오르고 네티즌들은 댓글로 입씨름을 벌이며 ‘진짜 아내가 맞는 것 같다. 남편이 불쌍하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남편뿐 아니라 수많은 네티즌들마저 아내를 ‘야동 배우’로 낙인찍는 가해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낙인찍기’를 확산시킨 공영방송 KBS는 정작 스스로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모른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16일에는 원래 ‘15세 시청가’인 <안녕하세요>의 시청가능 연령대까지 상향 조정하면서 ‘19금 특집’을 방영했다. <안녕하세요> 출연자 대부분은 다음날 아침부터 ‘야동 아내’, ‘동안 남편’, ‘겨털 집착남’ 같은 별명으로 하루 종일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린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연스레 프로그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본방송 자체도 고정적 시청자 층을 보유한다. 동시간대 프로그램인 SBS <힐링캠프>가 큰 폭으로 춤추는 시청률을 보유함에 반해 <안녕하세요>는 7~9%대를 꾸준히 유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세 시청가’라는 표지 하나 달고 방송 내용 수위와 등급을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안녕하세요>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문제 있는 사연을 걸러내고 방송 초기 수준의 고민 상담으로 돌아간다면 현재 방식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연에 상금을 몰아주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수하겠다면 <안녕하세요>는 하루빨리 출연자들의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이나 구체적인 교정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출연시키고, 사연 수를 줄여가면서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간을 늘리는 등의 변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한 수준으로 침해하는 사안을 다루면서도 가볍게 웃어넘긴 뒤 억지로 화해시켜 문제를 일단락 짓는 식의 행태를 지속한다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무책임하다는 평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방송진행자들의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한다. <안녕하세요>처럼 특이한 사람들을 출연시키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도 선정성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적어도 <화성인 바이러스>의 세 진행자는 출연자의 이상행동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하고 교정을 유도했다.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넘기거나 크게 놀라는 게 전부인 <안녕하세요>의 진행자나 초대 손님과는 달랐다. <안녕하세요>의 시청자는 비정상적 행태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방송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심각하다 못해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 훈훈한 웃음으로 덮이면 시청자의 인권 감수성은 자연히 둔감해진다.


방송은 시청률로 성적표를 받는다. 그러나 좋은 시청률이 곧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웃기기 위해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별의별 소재를 다 등장시키는 <안녕하세요>는 결코 ‘안녕하지 못한 방송’이다. 이제라도 ‘공영방송 KBS’의 예능 프로그램답게 편안한 웃음을 주는 방송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