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ㅣ밀정] 애국심 운운하는 이들에게 고함… “<밀정>을 애국심으로 보고 싶다”(2016.10.)
등록 2016.09.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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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ㅣ 밀정(2016 한국, 액션, 감독 : 김지운)

애국심 운운하는 이들에게 고함…

“<밀정>을 애국심으로 보고 싶다”


강석봉 회원·경향신문 기자



수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를 글 몇 자로 평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오만함이다. 그것을 무수한 사람이 보지 않았더라도, 수많은 이의 땀과 고민이 녹아있는 영화를 함부로 평하는 것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은 오지랖이다. 이 글을 쓰는 이가 그리 올곧게 그것을 평가할 위인이 못 된다는 자책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 <밀정>이라면 더더욱. 수많은 평론에서 ‘메타포(은유)’를 얘기하고,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들춰내 지적질의 ‘야마’를 잡아내고, 어쭙잖은 스스로의 역사의식을 비판의 잣대랍시고 들이대도, 솔직히 그게 맞는지 그른 지 평가하기조차 민망하다. 영화를 그리 만들고, 평가를 저리 하는 것… 그 정도의 자유야 있는 나라 아니던가.


영화 <밀정>처럼 이리 관객 수를 빨리 늘려가는 영화는 그저 영화로 향하는 이들의 발자국에 의지해, 그것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견 <인천상륙작전>에 몰려든 관객이나 <덕혜옹주>를 찾은 발걸음 역시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들이다. 그들이 올린 이해할 수 없는 카운트를 분석하기보다, 시사회에서 느낀 내 ‘졸렬한’ 기우를 깨뜨리고 <밀정>에까지 기적과도 같은 발걸음을 이어준 영화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 정도 쓰면 전체적으로 개별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은 밝혔다 하겠다. 이글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인상 비평이다. 구조 비평을 원하는 사람은 ‘네이버’에 검색어 ‘밀정’만 쳐보면 수없이 확인할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주시라. 




‘내리막 치는 속도감’, 그 낯선 느낌을 자유롭게 즐기시길


이 영화의 스피드는 인생사를 닮았다. 그 속도감은 강→중→약이다. 내가 시사회에서 걱정했던 부분이다. 김빠지는 영화들이 애써 그랬다. 처음에 때려 부쉈다가, 흐지부지되는 예들이 흔했다. 시사회 후 적지 않은 영화 기자들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들은 쉽게 ‘재미없다’ 부터 ‘별로다’까지 다양한 폄훼의 단어로 <밀정>을 평했다. 이는 기사나 평론이 아니라, 사적인 대화를 통해서다. 이런 것은 네이버 전문가 평가가 관객평·네티즌평보다 10점 만점에 -1점 정도 낮은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 역시 그 속도감이 내리막이었으니 기대감마저 싱크로 되는 듯 해 걱정했다. 내 걱정은 이 영화가 지닌 가치마저 평가절하 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의열단 핵심세력 김장옥 역을 맡은 박희순은 영화 시작과 함께 내달렸고, 일본 경찰 역을 맡은 수많은 무명씨들은 지붕의 기왓장이 깨지도록 그를 뒤쫓았다. 카메라는 관객과 ‘밀당’을 하며 다양한 기법으로 긴장감을 속도감으로 키워냈다. 이후 캐릭터들이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며 속도감은 변속기 2단 기어에 맞춰졌다. 뛰던 그들이 걸었으니 속도감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역으로 하이라이트라는 고개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변속 2단이 제격이다. 4단 기어는 18일 현재 600만 관객을 넘긴 인원을 다 싣고 가기 버겁다. 영화 후반 적지 않은 주연들은 자리를 차고 앉았다. 연계순 역을 맡은 한지민은 고문 틀에 앉아 있고, 김우진 역을 맡은 공유는 형무소에 앉아 있고, 이정출 역을 맡은 송강호는 법정에 앉아 있다. 한 때 뛰다가 걷던 그들이 자리를 차고앉으니 영화의 속도감은 극도로 정체됐다. 


영화 전체적으로 뚝 떨어진 속도감이 이 영화를 낯설게 할 수도 있다. 시나리오가 문제라느니,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이라느니, 여러 가지 평가가 줄을 이었다. 다 자가당착을 기반으로 한, 한편으론 뻔뻔하고 한편으론 줏대 있는 이들의 평가다. 그러나 관객의 발길은 이들의 평가와 궤를 달리했다. 이 영화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처럼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영화가 관객들의 눈·귀를 정신없이 몰아쳐야 성공한다는 일반 공식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우려를 비웃듯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고 있다. 좀 더딘 속도감도 괜찮을 수 있고, 지루함(?)을 감내할 뭔가가 <밀정>에 있을 수 있다. 백번 양보해 당신들도 옳고, 그들도 옳다.


하지만 이 늦춰진 속도감은 내겐 광영이다. 이 순간 캐릭터 간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수많은 캐릭터에 내 감정을 이입할 여유가 생겼다. 눈에 콩깍지를 씌워 정신없게 만들지 않고, 그들의 동선을 따라 캐릭터와 주변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송강호의 갈등에 내 머리가 빠개졌고, 정채산 역을 맡은 이병헌의 마초적 술 대작에 내 간이 부화가 걸린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한지민의 아크로바틱한 총격 신에 내 가슴을 그녀에게 내주고 싶은 변태적 상상에 빠졌고, 공유의 ‘수트 빨’에 올겨울 양모 양복 한 벌 장만할 생각이 들었다. 하시모토 경부를 맡은 엄태구의 실성 연기에 중학 시절 내 귀싸대기를 갈겼던 모 선배의 비열한 웃음이 떠올랐다. 결국 브레이크 걸린 <밀정>은 옴니버스로 내 드라마를 만들게 했다. 저마다에겐 그 나름의 <밀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속도감 문제 하나로 영화 전체를 용두사미로 몰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폄하나 폄훼는 그에 합당한 죄과가 따라야 하지만 <밀정>에서 보인 지루함의 일면을 알리바이로 대기엔 함량이 떨어진다. 뭐, 오락 영화에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사실을 전제하고,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팩추얼 드라마든 간에 ‘있었음’을 전제한 것이라면 그 속도감은 만든 이가 조절하는 게 맞다. 


‘캐릭터에 대한 모호감’, 영웅의 이름을 차용하지 않는 조심스러움 엿보여


캐릭터에 대한 모호함은 고민거리다. 황옥(1920년 의열단의 제2차 국내 거사계획 실행요원)이라는 실제 인물이 모티브라는 이정출(송강호 역)은 정서불안에 걸린 듯 하고 주관마저 없어 보인다. 해야 할 것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불가해한 행동 패턴을 그리는 모습은 회색주의자의 전형이다. 그가 ‘조국에 대한 부채감’에 독립운동에 치우쳤다고 영화 속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 역시 명확치 않고 실제 그랬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이 캐릭터의 모호함은 내겐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라고 그 상황에서 분기탱천, 역발산기개세의 모습으로 홀연히 떨쳐 일어날 수 있을까. 갈등하고 정리 안 된 상황에서 시간에 몰려 끌려갈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결정 국면에 내 스스로 그래왔듯이, 그 자리에 내가 서게 되더라도 그럴 것이란 생각에 소름 돋으며 이정출에 빠져들었다. 이정출은 독립 영웅이 아니지 않은가. 통역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어떤 이유로 일본 순사로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 그의 캐릭터는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김우진(공유 역)과 연계순(한지민 역)과는 처음부터 다른 인간이니 당연하다. 




이정출에게서 나를 발견한 가슴 뜨끔함과 달리, <밀정>의 단편 속에 역사적 기록을 반영하려던 모습엔 박수를 보낸다. 영화 속 김장옥이 총 맞아 뜯어낸 엄지발가락은, 실제 의열단 김상옥 열사가 서울 온천지를 신출귀몰하며 도주할 때 동상 걸려 잘려나간 엄지발가락을 떠올리게 했다. 이 영화의 출발이 <항일투쟁기 황옥의 양면적 행적>이란 향토사학자의 논문에 기초했다는 사실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됐다. 팩트에 기반을 두지만, 캐릭터 누구도 영웅의 이름을 차용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영화적 상상에, 오롯한 영웅의 열렬함이 오도될 수 있음을 저어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보면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보다 예의바른 영화다.


그들을 오마주한 <밀정>은 그들을 복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밀정>의 캐릭터는 예능 <러닝맨>과 플롯상 닮아 보인다. 불손한 상상이지만 <러닝맨>의 캐릭터와도 연결된다. <러닝맨>의 이광수는 ‘밀정’을 빼다 박았다. 이 예능은 그의 작당을 중심으로 X맨을 찾는다. 이정출은 이광수이고, 정채산은 김종국이고, 김장옥은 유재석이고, 김우진은 지석진이다. 당연히 연계순은 송지효다. 모두 서로 다른 캐릭터로,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행동한다. <러닝맨>과 <밀정>은 다르지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닮았다. 포인트는 관객마다 제각각이지만, <밀정>에 그 무엇이 숨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관객들은 영화관으로 ‘런닝’하고 있다. 앞서 ‘밀정’에게 있었을 ‘부채감’이, 당시를 살아낸 ‘선배’에 대한 ‘부채감’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을 수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 역시 <밀정>에 대한 애정이, <밀정>과 특수 관계인의 인간됨에 연유한다. 제작 전부터 하도 들은 <밀정>이기에, 기대감은 누구보다 산처럼 쌓였다. 그것이 기대치를 뭉그러뜨려도, 이런 영화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염원은 식지 않았다. 오늘도 영화관을 찾고 있는 남모를 한 명 한명의 애정이 켜켜이 쌓일수록, 그들의 선택이 정당함을 더욱 명확히 증명해 내고 있다. 


영화 <밀정>… 수준 낮은 눈으로, 수준 높게 평하려 애써보기


양심상 좋은 얘기만 할 수 없다. <밀정>의 최고의 장면들은 대개 기차 안 장면들로 채워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곳에서 ‘밀정’을 색출하는 방식은 어디서 본 듯한 X찾기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조금 더 난해한 ‘스도쿠게임’이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괜한 욕심일까? 다행히 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향토사학자 역시 “내가 내용을 좀 알아서 그런 지, 열차로 폭탄을 나르는 장면이 좀 지루했다”는 전언을 듣고 보니, 개인적 판단이 고집이 아니었음을 알게 돼 다행이다. 




일부는 이 영화를 절대 애국심으로 볼 수 없다. 건국절은 이들이 죽어 자빠진 수년 후에 생긴 것이니…. 시대정신의 승리라 얘기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정확히 보면 애국심의 발로다. 그들에게는 오늘의 기득권 세력이 인정하지 않는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이 살아 있다. 어쩌면 그들을 지켜보려는 관객도 그 법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이정출처럼 살지만, 정채산은 못되더라도 김우진의 생을 꿈꾸게 하는 <밀정>은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본 최고의 ‘인생 영화’다. 너무 미안해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수작이다. 수작 부릴 수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