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_회원 인터뷰|이진순 회원,정책위원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고 한 것.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죠
등록 2018.11.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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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진순 정책위원. 그는 2013년 6월부터 지난 8월까지 한겨레 <이진순의 열림>을 연재했다. 인터뷰어 이진순이 만난 122명의 이야기는 5년 2개월간 격주로 꼬박꼬박 독자에게 배달되었다. 그리고 이중 12명의 이야기는 단행본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문학동네)로 엮어졌다. 이진순 위원은 시민사회에서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는 희망제작소를 통해 직접적으로 시민사회에 발을 들였고, 2015년에는 비영리단체 <와글>을 설립했다. 늘 누군가의 반짝이던 순간을 묻던 그녀의 반짝이던 순간은 언제일까. 또 그녀가 꿈꾸는 시민사회와 언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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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고 한 것,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죠

 

인터뷰는 ‘나’라는 매개를 통해 ‘인터뷰이’를 전하는 것
임동준 : 오랜 기간 한겨레 <이진순의 열림>의 인터뷰어에서 오늘은 <날자꾸나 민언련>의 인터뷰이가 되셨네요. 입장이 바뀌어 인터뷰 당하시려니 어떠세요?

이진순 : 인터뷰이들이 인터뷰할 때 얼마나 부담되었을까 많이 절감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얘기할 때 말을 잘못할 수도 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토씨하나만 달라져도 뜻이 다르게 전달될 수도 있잖아요. 이 얘기가 제대로 전달될 것인가에 대해서 인터뷰이는 불안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임동준 : 이번에 출간된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을 읽다보면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시면서 힘들었던 인터뷰는 없으셨나요?

 

이진순 : 많죠. 처음에 인터뷰이가 마음을 쉽게 열지 않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죠. 이국종 교수 인터뷰에서는 그냥 그런 걸 썼어요. “잘못알고 오신 것 같다”는 말처럼 대놓고 가란 말만 안한 것이지 사실상 인터뷰를 안 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저는 간혹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 과정 자체도 인터뷰에 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식의 우여곡절 에피소드 자체가 그 인물하고 저하고의 관계를 보여주니까요.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서 조금씩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가 어떻게 진도가 나가는지를 전달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죠.

임동준 : 그래서인지 인터뷰가 굉장히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이진순 : 어떤 분이 “내가 인터뷰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반갑고 고마웠어요. 독자들도 인터뷰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접근을 하는 거니까요. 저라는 매개를 통해서 그 사람한테 천천히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 그러다가 퇴짜 맞기도 하고, 야단맞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을 같이 겪는 거죠.

임동준 : 인터뷰어로서 ‘이것만은 지키자’ 혹은 ‘이런 인터뷰를 해야겠다’ 같은 원칙이 있으신가요?

 

이진순 :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똑같은 인터뷰는 안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인물탐구를 위한 인터뷰였기 때문에 남들이 다 묻는 질문, 그렇게 타성에 젖은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상대방도 되게 재미없어 하고 저도 재미없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인터뷰 얘기나 강의 할 때마다 이런 인물탐구를 위한 인터뷰 같은 경우에는 객관적인 인터뷰는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해요. 저는 굉장히 주관적인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제 인터뷰 기사에는 ‘나는 어땠다’ 같은 1인칭 주어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건 모든 사람의 평균적인 생각을 반영하는 건 아니고 저의 생각과 의견을 담기 때문이죠. 혹은 내가 그 상대방에 대해서, 그런 주제에 대해서 무지, 오해, 편견과 같은 것들을 그대로 전제하고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그런데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또 이런 면이 있더라.’라는 걸 ‘나’의 관점에서 전하는 거죠.

관성과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난 선택

임동준 : 참 다양한 활동들을 하셨어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MBC 작가에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대학 조교수로 강의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홀연히 한국에 돌아와서 희망제작소에 근무하시고 2015년부터는 시민사회단체 <와글>의 대표까지 하고 계시던데요.

 

이진순 : 저처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사람보다 하나의 길을 꾸준히 하는 분이 더 훌륭한 분 아닌가요?(웃음)

 

임동준 : 이렇게 여러 가지에 도전하셨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진순 :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다가 한계를 느끼면 ‘또 다른 길은 없을까’ 이런 걸 찾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에요. 보통 사람들이 다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던 일에 관성이라는 게 있고, 익숙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날 딱 정리하고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가는 게 쉽지 않잖아요.

물론 저도 쉽지 않았어요. 제가 미국에서 교수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 와서 희망제작소에 들어갔는데 그 때도 인터뷰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보시고 미국에 있는 모르는 사이인 한국인 교수들이 저한테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했어요. 굉장히 긴 편지에 답답한 마음도 담겨 있었거든요. 사회 변화나 새로운 시도들을 추구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막상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왠지 만족스럽지 않고, 자기도 한국에 가서 뭔가 실천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와 같은 고민하는 분도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교수를 그만 둘 수 있나요?”라고 묻기도 했는데요. 저는 “사직서를 쓰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어요.(웃음)

 사람들이 약간 망설이면서도 기존에 하던 일들을 버리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니까 불만이 있지만 계속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늘 만족하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걸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이걸 안 그만두고 계속 있는 게 괴로워지면 선택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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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통해 <와글>은 청년정치를 꿈꾼다


임동준 : 2013년에 돌아오셔서 시민사회에서 일하시기로 결정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게 <와글>이잖아요. <와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더 나은 민주주의’였어요. 지금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말인 것 같은데 이 문구가 어떤 의미와 과정에서 나온 건가요?

 

이진순 : 기본적으로 <와글>의 설립 취지였어요. 제가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 올 때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그런 일이었고요. 저는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시민 참여가 시민운동이나 정치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걸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해왔어요. 직접 실천적으로 그런 일들을 하고 싶었던 거고요. 한국에 들어올 때 처음부터 교수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 시민운동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어서 처음에는 희망제작소에 있었고, 그 이후에 <와글>을 만든 거죠. 그런데 지금 시대에 맞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신건가요?

임동준 : 제가 시대에 맞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어요. 재작년 촛불집회에서도 그랬듯이 특별한 권위가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이어져 오고 있잖아요.

 

이진순 : 맞습니다. 저도 같은 뜻이에요. 촛불집회 전에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상대적으로 상대방을 납득시키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그걸 설명하려면 한참 걸렸거든요. 그런데 촛불집회를 직접 체험하고 나니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 문구를 들으면 그렇게 생각을 하시죠. 저는 이른바 80년대 대학을 다닌 386세대이지만 그때는 누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런 말을 대놓고 하면 잡혀가거나 학교에서 징계를 받기 때문에 누구나 다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 대신 말하고 감옥에 갈 사람이 필요했죠. 그러다가 대통령 직선제와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게 되었죠.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요구를 대리해서 수렴해내고 그걸 정책화하고 제도개선 요구하는 애드보커시가 2000년 정도까지 계속 되었죠.

 그런데 2000년 이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를 쓰고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각자 PC를 통해서라든가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정보를 검색하게 되었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논의하기도 하구요. 정보를 얻고 판단하는 일들이 훨씬 더 개개인 단위로 내려간 거죠. 그래서 일반 보통 시민들이 직접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집단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많은 여건이 갖춰진 것이죠. 다만 그런 사람들은 뭔가 말을 하고 싶고, 의견도 있는데 적절한 어떤 기회 그리고 토론, 합의의 룰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지 못하면 민주적으로 합의된 의견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와글>은 주로 그런 시민 참여 플랫폼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죠. 한편으로는 그런 식의 보통사람들이 만드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청년 세대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청년 리더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임동준 :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와글>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들었어요.

 

이진순 : 우리가 2018년 지방선거에 대해 같이 고민할 청년들을 지원을 받고 선발을 해서 여름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캠프에 갔던 20여 명 중에 7명이 출마했고, 그 중에 3명이 지방선거에서 당선됐어요. 그리고 직접 출마하지 않으신 분들도 출마한 후보를 위해서 홍보를 담당한다던가 하면서 도움을 주셨어요. 저희 <와글>도 같이 청년정치의 줄임말로 청치펀딩이라고 해서 ‘돈 없고 빽 없는’ 청년 후보자들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했어요. 캠프에 같이 갔던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지방선거에 나름대로 역할들을 했죠.

저는 이게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지방선거나 선거에 입후보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막막하게 생각하고,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떨어지신 분들도 굉장히 아깝게 떨어진 경우가 많았어요.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꽤 선전을 하고 아쉽게 석패한 경우였어요. 그분들도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구나’ 하는 의욕이 있어요.

임동준 :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실 생각이신 거죠?

 

이진순 : 네. 그럼요. 저희는 매년 8월이 매우 바쁘답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도대체 여름휴가는 언제 가라는 말이냐 이러는데요.(웃음) 이번 여름에도 2개의 캠프를 했어요. 하나는 ‘디지털 민주주의 국회연수과정’이었는데 국회에서 어떻게 하면 시민이 바라고 시민과 만나는 국회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국회의 전반적인 매커니즘도 알아야 하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하죠. 우리는 여기에 더해서 뭐가 부족한지, 시민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들을 낼 수 있는지 등을 고민했어요. 그런데 ‘저런 건 정말 당장이라도 해볼 수 있겠다’하는 저도 깜짝 놀랄 정도의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종합점수 상위 3명에게 저희가 석 달 동안 국회 인턴쉽 과정 경비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8월 말에는 청년 평화캠프를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4박 5일 동안 다녀왔어요. 이제 남북관계가 변화할거라는데 청년세대들은 통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통일이 되는 게 좋은지 어떤 지도 사실은 갸웃갸웃 하구요. 그래서 통일이 되면 뭐가 달라질지, 우리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의미 있는 통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토론하는 거죠.

 그리고 아무래도 저희가 다른 단체나 청년그룹과 달리 디지털 사회혁신이라고 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기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그런 시민참여 플랫폼을 위한 앱이나 웹서비스를 하는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이요. 정치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어 하거나 그런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좀 더 늘릴 생각이에요.

보통사람이 만드는 더 나은 언론과 민언련

임동준 : <와글>의 대표이시기도 하지만 민언련의 정책위원이시기도 합니다. 2014년부터 민언련과 함께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민언련에 합류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부분이었나요?

 

이진순 : 일단은 제안을 하신 박석운 전 대표님이나 김서중 교수님의 제안을 제가 감히 뿌리칠 수 없었구요.(웃음) 저는 사실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이라기 보다는 좀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하겠다고 온 사람이란 말이죠. 그래서 출발점부터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그 긴 세월동안 시민사회를 지켜온, 어려운 조건에서도 계속 그 자리에서 활동을 하신 분들에 대한 경외감이 있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빚진 마음이 있는 거에요. 저는 어쨌든 11년 동안 미국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어쩔 수 없는 ‘빚진 마음은 조금 갚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합류를 했습니다.

임동준 : 민언련 정책위원으로 활동을 하시다가 2017년에는 MBC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가 되셨는데요. 방문진 이사가 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요?

 

이진순 : 아뇨. 사실 쉬운 결정이었어요.(웃음) 그때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고, 일단 MBC를 바꾸는 것 굉장히 긴급했으니까요. 어영부영하다가 계속 늦춰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MBC의 경영진 그리고 잘못된 방문진의 매커니즘을 바꾸는 일이라면 일단은 참여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또 보궐이사였기 때문에 임기가 길지 않아서 더 부담 없이 참여한 것도 있죠.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는 너무 명확했어요. 원래 MBC에서 구성작가 일을 오랫동안 했었고, MBC에서 저와 함께 일을 했던 대부분의 PD들이 해고되거나 비제작부서로 쫓겨나는 걸 봤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정말 가슴이 아파서 MBC 뉴스를 볼 수가 없더라고요. 한때 내가 일했던 기관인데 어떻게 방송을 저렇게 할까.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났죠. 그래서 MBC에 어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지, 시민들이 공영방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뭘 바라는지에 대해서는 워낙 답이 명확한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임동준 : 정책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좋았던 결정과 아쉬웠던 결정이 있으신가요?

 

이진순 : 제가 참석하고 발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방송법 개정안, 특히 공영방송 이사의 선임방식에 대한 대안을 비교적 합의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데 참여했다고 생각하구요. 또 저는 원래 관심사 자체가 언론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이 만드는 더 나은 언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방송사나 신문사에 소속되지 않은 작은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 혹은 1인 미디어 제작자, 독립 언론 등등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민언련도 계속 기성언론, 신문과 방송에 대한 언론 모니터를 쓴다거나 방송 정책에만 올인하지 말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좀 더 새로운 미디어 제작자로 나서는 분들과 미디어가 유통되는 네트워크 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1인 미디어TF’가 정책위원회 내부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민언련 내에서도 그렇게 쉽게 이거를 가지고 어떻게 사업화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구체화된 안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논의를 더 해야 하지만 대폭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반짝이던 순간은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임동준 :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책 제목인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이진순 위원님이 생각하는 ‘이진순의 반짝였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진순 : (웃음)그거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반짝임’이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남들이 알아주면 고맙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내가 스스로 나를 돌이켜 볼 때 ‘내가 그래도 그때 이렇게 했구나’ 라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좀 자부심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순간인거죠.

 

아까 왜 10년 단위로 직업을 확확 바꿨는지 얘기했지만 저한테는 그게 매번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는데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 되니까 거의 그 공단 안에 있던 소위 말하는 활동가 조직들이 거의 다 와해되거나 없어졌어요. 구로공단 같은 경우에도 대기업들이 많이 지방으로 이전을 했고요. 그전까지의 80년대 상황과 다른 87년 6월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뭘 할 것인지 되게 막연했어요. 그런 경험을 안고 ‘나는 뭘 할 건가’를 고민했어요. 굉장히 암담하고 ‘나는 정말 인간적으로 쓰레기 같은 더 이상 활용가치가 없어진 존재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그래, 나는 쓰레기라고 해도 나는 재활용되는 쓰레기가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방송작가가 된 거에요. 아마 제가 그때 MBC에서 ‘최고령 보조 작가’였을 거예요. 방송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포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한 것. 마찬가지로 2000년 어름해서 뭔가 절망적인 상황이 됐을 때, 또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고 한 것. 그런 걸 해봤는데 특별히 전전긍긍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죠.

 흔히 열병은 열꽃을 피워내며 끝난다고 한다. 나의 시선에서 이진순 위원은 수많은 열꽃 피워내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진순 위원이 이야기한 ‘반짝이던 순간’은 수많은 열꽃이 모여 완성됐다. 각자의 열꽃이 피는 순간. 그것이 당신의 반짝이던 순간이 아닐까.

 

(인터뷰‧작성 임동준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